삼국 시대
'원삼국시대' 부족국가 수준이었던 시기는 이제 지나고 기원전 1세기부터 백제, 고구려, 신라는 비로소 중앙집권적 국가의 체제를 갖춰갔습니다. 562년까지 연맹 국가로서 유지된 가야는 신라에 흡수되기에 이르지요.
'한반도의 예술작품' 하면 떠오르는 미술품들은 이 삼국시대의 것들인 것 같지요?
우리에게 친숙하고도 먼 삼국시대의 미술에 대해 한번 알아봅시다!
백제
백제의 예술품에 대해 떠올려본다면 그중에서도 '백제 금동 대향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네요. 극도로 아름다운 이 금동향로를 만들어 냈을뿐더러 그들 특유의 섬세한 수공예 기술로 유명했던 백제에 대해 알아봅시다.
백제는 지리적으로 현재의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을 중심으로 성립된 국가입니다.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백제의 미술은, 특히나 대외적으로 중국 양나라 그리고 아래 덧붙여 서술할 일본과 교류가 잦았지요. 미륵사 석탑, 백제 금동대향로, 익산의 왕궁리 오 층 석탑 사리장엄구, 무령왕릉 유물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주의 '신촌리 금동관'에서 볼 수 있듯이 백제의 호족들은 '지배층과는 별도의 세력권'을 형성했다 추정되며, 봉건적 지위를 백제 지배층들로부터 인정까지 받는 상황에 있었다 생각됩니다. 그 외에 현재 전라도의 '영산강 지역 문화'는 '충청도나 경기도의 문화' 즉 백제 지배층이 자리를 잡았던 문화와도 현저히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일본 황제의 스승이자 정치 고문이라 하는 '왕인 박사'의 기록과 '칠지도'의 예시로부터 이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듯이 대외적으로 일본과의 교류가 상당히 성행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분묘 등이 최근 들어 백제 영역 안에서 발견되었답니다.
고구려
개인적으로 '고구려'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래전 즐겼던 '바람의 나라'라는 온라인게임에 등장하기도 하는 고분 벽화입니다. 그 특유의 빛깔과 산의 형태가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네요.
북한은 인근에 있는 '후기 고구려 고분군'을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 신청하기도 했는데,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고구려의 문화를 잘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유적은 역시 '고구려 고분군 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중국 또한, 같은 해인 2004년 '고대 고구려의 수도와 무덤군'이라는 이름으로 '지린성 지안시'를 중심 지점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는 '초기 고구려 고분'과 국내성, 환도산성, 오녀산성 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했습니다.
고구려 고분에 지금까지도 멋지게 새겨져 있는 고분벽화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한반도에서 나타난 회화예술의 대표적 예이며, 이 고분벽화에는 그 당시의 의복이나 계급뿐 아니라 건축양식, 생활 공간의 모습, 수레, 군사 등의 모습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기원전 37년, 고구려는 도읍으로서 졸본성을 건국했고 기원후 3년 환도산성으로 천도했습니다. 그 후에도 국내성으로 옮겼다가, 427년에는 다시금 평양으로 천도했지요. 광개토태왕 시절은 가히 '고구려의 전성기'라 칭할 수 있을 것인데, 기마무사를 운영하면서 영토를 매우 확장하던 시기인 동시에, 고구려는 북위와 지속적인 경쟁을 하면서 불교 그리고 한자를 수용하게 되며 왕권의 기틀을 잡은 것이지요.
이외에도 '고구려'는 일본 '호류지 금당 벽화'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신라
차후에 당의 힘을 끌어들임으로써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게 되어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잘 각인된 신라도 사실, 초기에는 한반도 동남쪽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불교 등 외국 문물을 수용하는 속도가 비교적 가장 더뎠답니다. 그런데도 독창적인 예술 양식을 보여주지요.
초기 신라는 아래 서술할 국가인 가야와 더불어 여러 형태의 도기를 생산하였고, '도기 기마 인물형 명기'가 특히 국보 91호로 등재되며 더욱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릇의 말 탄 인물 모습은 고구려 벽화의 역할과 같이, 당대 생활상을 추측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다른 예로 도기에 토우가 장식된 '토우 장식 장경호' 역시 당대 신라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모습뿐 아니라 심지어는 성행위를 하는 모습, 코끼리나 개미핥기 같은 여러 가지 동물의 형태를 토우로 만들어 붙여 창조했습니다.
7번 국도를 쭉 타고 내려와 부산에 도착하기 직전 한 번쯤은 다들 들러봤을 '경주'는 수 백 년 동안이나 신라의 도읍이었으며, 흥미롭게도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국제 교역망 종착지'이기도 했습니다.
서역의 영향을 받은 문양이 경주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드러나며, 특히 경주의 '98호분 남분' 출토 유리병은 이탈리아 로마의 유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기에 신라가 지중해 지역까지도 물품 교역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던 여러 동물의 형상을 토우로 표현할 수 있던 것도 역시, 국제적인 교역망 덕분이라 생각할 수 있지요.
가야
가야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공통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만들진 못했으며, 연맹국가 단계에서 이미 신라에 흡수되어버렸습니다. 가야의 미술품으로는 유명한 '오리 모양 도기' 등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대량의 도기들, 그리고 아주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향로 등의 공예품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가야 사람들도 고구려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한 말 갑옷, 판갑 등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모습이 그 유물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삼국시대의 한국 미술사도 어느정도 정리되었으니 다음 포스팅에선 통일 신라와 발해가 포함되는 남북국 시대의 미술사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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