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서양미술사에 관한 포스팅을 마치고 이번 시간부터는 동양 미술사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그중 동아시아의 미술부터,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미술사부터 한번 풀어보려 하는데요.
한반도의 미술사 연대기
한국의 미술은 한반도를 비롯하여 주변 지역에서 발생했던 미술을 칭합니다. 불상, 도자기화, 석탑 등의 입체 시각 매체와 고분 벽화, 문인화, 산수화와 같은 평면 시각 예술과 같은 예술을 함께 포함하고 있지요.
한국 미술사에서 미술은 서예 같은 시각예술 이외에도 아름다운 한옥, 궁궐 같은 건축, 향가나 시조와 같은 문학 그리고 판소리, 또한 탈춤과 같은 공연 예술과 큰 연관을 맺으며 발달했습니다.
근대에는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시대를 지나면서 탄생한 서양화, 영화와 사진 역시 들어왔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게 되며 자연스레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현대미술계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백남준 등의 작가가 비디오아트가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는 신기술인 인터넷 등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아트, 타국의 여러 예술이 소개되면서 더욱 다양한 분야로 미술이 발전되고 있지요.
모든 미술 작품이 작가의 생활, 사상, 감정 등을 대변하고 있지요, 이처럼 한 국가의 미술은 그 민족만이 가진 민족성을 잘 반영하는 좋은 예입니다. 반도이기에 일찍부터 대륙문화와의 잦은 교류를 통한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문화를 탄생시킨 한반도 민족은 자연과의 긴밀한 조화로 창의적이면서도 소박한 미술 세계를 이루었습니다.
'소박함의 미학' 이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한국의 미술, 한번 알아봅시다.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의 한반도 사람들은 아직은 정착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유랑생활을 했지요. '아슐리안 석기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부터는 상세히 서술할만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는 '덧무늬토기'입니다. 토기의 입 부분 둘레에는 진흙이 덧붙여져 있어 여러 문양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덧무늬토기라고 칭하게 된 것입니다. 덧무늬는 크게 지그재그식으로 흙 띠를 배열한 것 그리고 팥알처럼 돋은 점열을 평행선 바깥쪽에 한 줄씩 배치한 방식 등이 존재합니다.
한반도에서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의 공예품은 토기입니다.
경작이 신석기 시대 초기부터 진행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그 당대 인류가 토기를 통해서 식량을 저장하기 시작했으며, 물건을 미적으로 꾸미려 했다는 사실 또한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이 시기 토기는 구덩이를 야외에 판 후, 700도가량의 온도로 가열, 제작하였다 추정됩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와 관련된 연구 자료에서, 사람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50000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학창 시절 미술책 첫 페이지를 장식하던 '빗살무늬토기' 또는 즐문토기가 등장했습니다! 나무나 뼈로 만든 무늬새기개라는 도구를 가지고 짤막한 줄을 그릇 외부에 누르거나 그어서 빗살무늬를 새긴 겁니다. 질그릇에 따라서 이런 빗살무늬는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는데요,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는 점선 형식의 짧은 줄을 한 방향으로 또는 서로 방향을 어긋나게 그려 생선의 뼈와 같은 모양을 만든 특징이 있습니다.
기원전 2000경 정도에는 마침내 빗살무늬 문양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 '민무늬토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실용성을 더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시기가 되니 인류의 생산력 또한 크게 늘어나니 토기의 크기가 커지고 장식적인 목적보다 이제는 실용적 목적이 더욱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조선 시대
'비파형 동검'은 특히 고조선의 문화권이었던 곳에서 출토된답니다. 이 밖에도 돌칼, 곡옥, 붉은간토기 등이 출토되지요. 상당히 많이 출토되는 '제의 용구'만을 본다면 고조선이 극동 시베리아 지역 샤머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고조선의 문화권 영역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는 역사적으로 청동기와 철기를 포함합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기원전 300년경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지요. 또한 이시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집단으로 취락을 만들어서 거주하기 시작했음이 이 시대 관련 유적을 통해 쉽사리 확인됩니다. '구리'는 이 시대에 구하기 힘든 물질이었으며 청동기 물품은 위에 서술했듯 주로 동검, 거울, 방울 등 제사 목적인 제의 용구가 많이 발견됩니다. 청동기의 제의 용구, 집단취락, 고인돌 같은 사례로 비추어 본다면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 계급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제사장 중심 국가체제가 성립되기 시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인류는 '고인돌'을 만들었는데, 그 내부에 청동기 등의 여러 용품을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300년 무렵에 비로소 고조선에서 '철기 시대'에 들어오죠.
자, 이제는 삼국시대 바로 이전인 '원삼국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열국 시대'라고도 불리는 '원삼국 시대'는 기원전 이후~ 기원후 2세기 중반까지의 초기 철기 시대 이후를 말합니다. 고조선이 쇠퇴, 멸망한 이후, 부여의 건국 시기부터 삼국이 건립된 이후 2세기~ 3세기에 걸친 시기를 역사적으로 일컫습니다.
원삼국 시대
이 시기에 한반도에는 여러 부족국가가 존재했는데 귀에 익숙한 부여, 옥저, 동예, 삼한 등이 있었습니다. 철기의 사용 시작 이후, 기원전 300년 무렵~ 백제, 고구려, 신라 이 삼국이 지배적 국가로 비로소 성장하게 된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바로 원삼국 시대라 칭하는 겁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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